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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전래와 서리풀 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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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ta
댓글 0건 조회 1,168회 작성일 20-07-07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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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본당 설립 이전의 지역 교회
 복음의 전래와 서리풀 공소

- 서초동 지역의 복음 전래

제 2 장 복음의 전래와 서리풀 공소

 

2) 복음의 기원과 전래 시기


실재로 서리풀 공소의 초대 회장이었다고 추정되는 김 회장은 일찍부터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의 양자로 제2대 공소 회장을 지낸 김의석(벨라도) 회장이 1901년 생이므로, 그 부친의 나이를 감안할 때 적어도 박해 말기인 1870년대 이전에는 초대 김 회장이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현재 그의 집에 남아있는 오래된 천주교 서적들도 이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서초동 지역에 천주교 신앙이 싹트게 된 것은 적어도 한국 천주교회의 박해 말기였다"고 할 수 있다. 또 이 시기에는 서초동 바로 이웃인 게리(지금의 양재동)에도 천주교 신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충청도에 살던 천주교 신자(정씨였다고 함)가 박해를 피해 게리로 이주해 왔던 것이다.


정씨 집안의 신자들은 훗날 서리풀 공소가 설립되면서 이 공소에 다니게 되었다. 지금은 양재동 지역과 서초동 지역이 각기 다른 본당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본당의 관할 구역이 분리되기 이전만 해도 그 신자들은 이웃과 같이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마 박해 시대부터 서리풀 지역과 게리 지역의 신자들이 비밀리에 왕래했으리라 짐작된다.


서초동 지역은 본래 수원의 '갓등이 본당' 구역이었다. 

그러다가 1893년 1월 20일자로 '약현본당(지금의 중림동 본당)소속이 되었다. 왜냐하면 과천의 동면 지역이 갓등이 본당과는 거리상으로 멀었고, 따라서 알릭스 신부와 약현 본당의 초대 주임인 두세(Doucet)신부가 협의한 끝에 서울 근교의 공소들을 약현 본당으로 처음에는 문안의 명동 본당과 구분하여 '문밖 본당'으로 불렸으며, 설립 직후 교세가 빠르게 확대되었다. 또 이러한 추세에 편승하여 본당의 두세 신부는 동면 지역에도 새 공소를 설립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맨 먼저 신부의 방문을 받은 곳이 바로 서리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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