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소감문 -신양선 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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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25년 올 한해, 사도행전 그룹 공부를 하면서, 성령강림과 교회의 시작을 알게 되고, 초기 교회의 뜨거운 신앙과 성령의 역사를 깊이 묵상하며, 성령님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구원 업적이
교회의 탄생과 함께 사도들을 통하여 널리 전파되는 과정을 기술한 성경입니다. 사도행전에는 땅끝까지 퍼져 가는 하느님의 말씀, 형제애로 일치하여 성장하는 공동체의 모습, 복음의 사도들에게 힘과 용기와 격려를 주시는 성령의 모습 등 초대교회의 생생한 삶의 역사가 나타나 있습니다. (생활성서).
올해 3월, 사도행전 그룹 공부를 시작하면서, 문제집 1과의 제목이 “나의 증인이...”이었습니다. 이 단어는 1장 8절에 나오는데,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이 구절을 읽고는 제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도 증인이 되겠습니다”하고 손을 번쩍 들고 뛰쳐 나가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2장에 드디어 성령강림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사도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함께 그들이 묵고 있던 위층 방으로 올라가서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사1:13)하며, 성령이 내려오시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오순절! (사2:1~4)
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며, 그들이 앉아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우며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 앉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데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신령한 언어를 의미하는 것이겠죠. 이 장면을 상상하면서 “아!! 나도 거기에 있었으면...나도 신령한 언어하고 싶다”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본당에서 성령세미나가 개최되었고 저도 세미나에 참가했습니다. 성령 안수와 미사가 있던 날, 저는 사도행전 2장에서 묘사된 성령강림의 순간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약 1,900년 전에 쓰여 진 사도행전 2장, 그 말씀들이 살아서 지금의 저의 가슴을 마구 뛰게 하고 성령의 기운이 휘돌아 성당 안에 가득했습니다. 그 후로 성령기도회가 서초동성당에서 매주 열리게 되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봉사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저는 극 I 에 못해신앙 (모태신앙이 아니라 못해요 못해요하는 못해신앙!)인 입니다. 상처 잘 받고 “No”소리 못하고, 가족 일이긴 하지만 나름 십자가 많이 지고 힘들게 사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도 성령기도회 봉사하겠다고 대답한 건, 저답지 않은 일이며, 성령께서 이렇게 변화시켜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직도 봉사는 힘들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 힘듭니다. 그러던 차에 바오로 사도에 대해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바오로로 회심하는 극적인 사건은, 하느님의 자비와 부르심이 얼마나 놀라운지 보여줍니다. 특히 바오로 사도의 열정적인 세 차례의 전도 여행은 복음이 유다인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열려있고 땅끝, 즉 로마까지 복음을 전파함을 보여줍니다. 이런 업적을 이루고 주님이 선택하신 바오로 사도!
그런데, 저는 “바오로 사도와 한 시대를 살고 있던 사람들은 그 바오로의 회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였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가족과 내 동료들에게 칼부리를 겨눌 때는 언제고? 회심? 스테파노가 순교할 때도 그렇게 쳐다보고 있더니만. 회개? 그래! 회개했다고 치자! 그럼 하느님은 왜 그런 사람을 선택하신 걸까? 나는 평일미사도 자주 참여하고 나름 내 십자가도 묵묵히 지며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주님께 머무르려 노력하고 있는데.. 나 한테는 목소리도 안 들려 주시고 꿈에서도 나타나지 않으시면서...”하며 투덜거릴 때 주님께서 “내 맘이다.”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공동체 안에서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들은 성격도 다르고 모습도 다르고, 다 다릅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다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시고 좋아하신 그 모습을, 내가 뭐라고 “나와 달라! 안 맞아!” 하고 있는지. 쯧쯧! “하느님의 기준은 하느님께서 정하시는 것이고. 나의 판단과 기준 같은 건 내다 버려.” 이런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 성당에서 미사 같이 드리는 교우들이, 같은 시대를 힘들게 살아가는 전우 같고 친근하게 느껴졌으며, 제발 웃으면서 평화의 인사하라는 어느 신부님의 말씀대로 진심을 다해 열심히 웃으며 인사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성령을 받기 전의 모습을 보면, 똥 멍청이셨지요. 깨어 기도하라 하셔도 자고 또 자고, 불과 두 달 전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 맹세까지 하면서 부인할 정도로 겁쟁이셨지요. 성령강림 이후, 지혜와 통찰력을 지닌 사람으로 변화된 베드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이 참으로 부활하셨고, 하늘에 오르시어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다는 복음을 담대하게 선포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 베드로가 정말 그렇게 훌륭한 연설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성령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by 송 p142)
사도행전을 공부하던 올해 내내, 교회는 성령의 인도로 태어나고 성장해 왔음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와 공동체는 어떤 인간적 수단이나 성공전략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과 은총으로 살아 움직이며,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성령께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일 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성령의 역사서입니다.
또한 성령강림을 통해서 제자들은 더 이상 연약한 사람들이 아니라. 복음의 증인이자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힘찬 독수리처럼 날아 올라감을 보았습니다. 저도 저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어, 저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지혜와 용기의 은총을 내려주시어, 두려움 없이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도행전 20장 22절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가 가는 고을에서마다 일러 주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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