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를 마치며 -임지영 베로니카- > 자유게시판

본당소식

자유게시판

창세기를 마치며 -임지영 베로니카-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서초동성당
댓글 0건 조회 20회 작성일 25-12-13 15:23

본문

창세기를 마치며

임지영 베로니카

 

초등학교 4학년, 그토록 바라던 반장이 되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반장 된 소감을 이야기했는데 반 친구들이 꺄르르!’하고 웃었습니다. 제가 여러분, 저를 반장으로 뽑아주셔서 감사하나이다, 아멘!’이라고 했었답니다. 너무 신난 마음 탓인지 평소에 예수님께 기도할 때처럼 저도 모르게 기도하듯이 반 아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것입니다. 그 뒤로 남자 친구들은 저를 예수 반장이라고 놀렸습니다. 멋쩍게 같이 웃기는 했지만, 더 이상 놀림을 받지 않기 위해 제 신앙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사춘기 때에는 종교를 열심히 믿는 친구에 대한 특이한 시선이 있었습니다. 저도 집과 성당에서만 주님을 만나고 다른 친구들에겐 신앙을 꽁꽁 숨겨두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가톨릭청년성서모임이라는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많이 놀라웠습니다. 그들의 삶에서의 나눔들은 솔직하고 스스럼없었습니다. 진실된 마음이 담긴 기도가 예뻤습니다. 다 같이 성가를 부를 땐 젊은이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가슴을 울렸습니다. 마음껏 주님을 사랑하고 나의 마음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모습들이 참 신선했습니다. 그동안 감춰왔던 나의 얕은 신앙의 마음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들과 함께 학교 캠퍼스에 모여 성서를 읽는 순간이 참으로 특별했습니다. 지나고 나니 저의 신앙의 리즈 생활이 이때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간 신앙에 대해 느낀 갈등과 숨김, 그리고 깨달음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더욱 소중했습니다.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며 시간은 많이 흘렀습니다. 원하는 직장과 원하는 것 이상의 배우자와 아이들을 주신 은총은 아마도 성서모임 시절, 예쁜 베로니카를 기억하시고 주신 주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몸이 아파 1년간의 질병 휴직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분명하게 물고기 모양의 가톨릭성서모임이 떠올랐습니다. 청년 때는 마르코 복음까지 공부하였지만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에 창세기로 신청을 했습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20여 년 전의 베로니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맑았던 감정과 함께 살아온 삶의 경험들이 모여 지금의 제가 더 깊고 다정한 가슴으로 창세기를 읽고 있었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창세기를 만나니 주님이 더 좋아집니다. 사랑하는 존재가 더 많아지다 보니 하느님의 사랑을 좀 더 깊이 배울 수 있나 봅니다. 성서에서 만나는 하느님의 따뜻한 시선, 지친 심신을 아늑하고 빈 구석 없이 감싸 안아 주시는 하느님의 품은 무엇보다 큰 힘입니다. 단조로운 한 주 중 성서모임이라는 하루를 끼워 넣으니 제 생활이 마치 봄빛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흠 없는 이가 되어라(17,1)’ 하신 주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때로 흔들리고 실수하더라도, 진실하게 하느님을 바라보고 다시 돌아가려는 마음이 바로 흠 없는 삶의 시작임을 일깨워줍니다. 부족함 많은 일상과 실수 속에서도 저는 아브라함, 노아, 요셉 같은 믿음과 순종의 마음을 닮아가고자 합니다.

 

위로가 되는 향기 나는 글이나 마음을 안아주는 노래보다 주님의 말씀으로 만난 그룹원들의 모습 하나하나에서 따뜻한 삶을 배웠습니다. 솜털 같은 기분으로 이야기 속 창세기를 걸어왔으니 이제 탈출기를 만나 삶의 지혜로운 여정을 걷고자 합니다.

상을 받을 땐 수상 소감을 이야기합니다. 반장이 되어서도 당선 소감을 말합니다. 저도 이번 창세기를 마치면서 소감을 이야기할 수 있어 기쁩니다. 저희를 이끌어주셨던 젤뚜르다 봉사자님, 분주한 일상 중 저희를 만나러 오는 가벼운 발걸음에 감사했습니다. 고운 마음들이 모여진 창세기 그룹원들, 모두 특별했습니다. 휴직 기간 안에 주님께 받은 또 하나의 특별한 상입니다.

 

가장 예뻤던 모습을 다시 기억하게 해주신 주님께서 주신대상!’저의 창세기입니다.

감사하나이다, 아멘!’


73b7cd22dc6ebf7663089c64874c461b_1765606990_7804.jpg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편번호 : 06636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64길 73 TEL: 02-585-6101FAX : 02-585-5883
Copyright © 천주교 서울대교구 서초동성당. ALLRights Reserved.
FAMILY SITE